책으로 보는 세계/사회와 경제

도대체 석유가 뭐길래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죠? (석유로 보는 경제, 석유의 역사)

개발자 DalBy 2024. 5. 14. 13:15
반응형

도대체 석유가 뭐길래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죠? (석유로 보는 경제, 석유의 역사)

 

주의: 석유의 종말은 없다 책을 인용하여 재해석한 달피셜(뇌피셜) 포스팅 입니다. 참고의 용도로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석유 종말은 없다 책 표지
석유의 종말은 없다

Crude Volatility(석유의 종말은 없다)

로버트 맥널리 지음, 김나연 옮김

 

이 책을 인용한 이유?

예전에 xx Gas에서 LPG, LNG에 관련 시스템 프로젝트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 우연히 석유에 대한 관심이 생겨 해당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석유의 종말은 없다!(엥? 2040, 50년에 고갈된다 했었는데?)

옛날 TV방송 선전을 보면 2040 2050년 이 후 "석유가 고갈되어 대체 에너지원을 찾아야 한다!" 라는 내용을 많이 접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증발한듯 나오지 않고, 탄소 중립에 대한 환경문제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땅을 파고 석유를 시추한다.
석유 시추

 

그러한 이유는 간략하게 뽑자면 여러 새로운 유전 지역 발견과 셰일가스 추출 기술의 발전, 석유 정제 과정의 고도화로 해당 유전의 수율이 이전 보다 대폭 증가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탄소포집 기술은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압축 한다. 그 후 재활용 한다.
LG 케미토피아 탄소포집 기술

 

하지만 이러한 화석 연료의 사용은 많은 탄소를 발생시키며 지구를 점점 뜨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제 환경기구는 탄소 중립을 권장으로 하였고 여러 선진국에서는 탄소를 자원으로 재활용하는 탄소포집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lgchem.com/2023/05/11_drm/)

 

 

1부 혼돈에서 질서를 찾기까지(1859~1972)

1부는 석유의 발견과 수요 공급 1차 변동기, 록펠러 시대, 2차 변동기부터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석유 산업의 생태계를 대략 말해주고 있습니다. 처음 알았는데 석유는 처음부터 휘발유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등유로 먼저 생산되어 공급 되었다고 합니다.

등유 램프
등유 램프

 

왜 등유였을까요?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지만 첫째는 전기 조명이 보급되기전에 고래 기름으로 어두운 밤을 밝히며 사용하였는데 조명용으로 등유가 안성 맞춤이었습니다. 초기의 정제기술은 매우 제한적이었고 등유는 원유에서 생산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제품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다른 조명보다 더 안전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석유에서의 등유 정제 기술로 인류는 드디어 밤을 정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기로 등유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등유의 공급량이 수요에 맞출 수 없어, 부유한 사람만 사용하는 값비싼 사치품으로 사용되어버렸습니다.

 

록펠러 이미지
존 데이비슨 록펠러

 

D의 의지!! 존 D, 록펠러(석유왕)는 스탠다드 오일을 창업하여 석유 산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석유의 용량 단위를 보면 배럴이라는 단위를 사용하는데,  처음 기름을 보관하기 위해 위스키와 와인통을 사용하여 기름을 저장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에 유래되어 석유의 단위가 배럴이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측 해 봅니다. 어느날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첫 유가 폭락이 발생하였습니다. 유가 폭락의 이유는 원유 산유량을 저장하고 운반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버린 것 입니다. 한 마디로 공급 과잉 입니다. 1860년 부터 2년까지 유가는 배럴당 20달러에서 10센트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석유 시추 업체는 공급을 중단시켜 석유의 가격을 빠르게 치솟게 합니다. 이렇게 석유는 호황과 폭락이라는 패턴이 생성되었는데 너무 많거나 너무 부족하거나 공급과 수요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여 가격의 변동성이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첫번째 변동의 여파로 록펠러는 지속적이고 신뢰적인 원유의 흐름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1차 변동기와 록펠러 시대 2차변동기로 순으로 석유의 가격은 안정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록펠러는 석유산업에 가져온 질서와 안정은 여러 세계 시장에서의 성장을 촉진하였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

 

이렇게 등유의 수요 발생부터 1차 유가 폭락 후 안정화 시대에 접어들며 가솔린 엔진의 개발과 1차 세계대전으로 2차 변동기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내용으로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요? 왜 유가는 이렇게 변동성이 크게 작용할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조명으로 부터 운송 수단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송(?) 왜 중요한 것일까요? 1차 세계대전으로 빠르게 보급하고 전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급은 다른 도시와 다른 도시들간의 빠르게 교류되어 도시 발전을 촉진 시켰습니다. 점점 석유의 중요도가 높아진 것 입니다. 또한 파이프라인과 유조선등의 발전으로 대용량으로 저장하고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석유를 사용하는 나라는 경제 발전에 용이하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시절 석유 사업가라면 고민했을 겁니다. "모두가 필요로 하는 석유 어떻게 해서라도 비싸게 팔고 싶다!" 이것은 장사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플라스틱의 PET의 성분이다.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PET)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석유는 다양한 방면에 활약합니다. 인류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합성섬유, 플라스틱, 연료, 도로 심지어 먹거리까지 인류는 석유를 소비해야 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석유의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여러 대체 제품이 있다면 대체 할 수 있는 제품으로 대체하면 되는데, 석유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즉 가격이 상승하여도 소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원유 값이 오르면 모든 물가가 상승하는 것 처럼 마치 연쇄고리에 물려 움직이는 단단한 쇠사슬과 같습니다. 이렇듯 공급 및 수요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세계는 피곤해 질 것 입니다. 위에 언급했던 장사의 근본은 이루고 싶어도 이루지 못하는 어느날의 개꿈과 같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로 석유 가격 안정을 위해 카르텔이 형성되었고, 나라가 직접 공급을 통제하거나 규제하는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부 석유수출기구(OPEC)가 지배하는 석유시장(1973~2008)

제 2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식민지 반환 및 국가의 독립으로 석유 수급의 패턴이 변화하며 석유시장에 혼란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여러 산유국의 쿠데타와 혁명 및 정치적 이슈로 인하여 혼란에 혼돈의 카오스 였습니다. 산유국은 연합을 만들어 OPEC를 결성합니다. (1960年 9月)

 

OPEC 석유 수출국 기구
OPEC

 

OPEC 생산국들은 세계 석유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 할 정도로 거대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러한 이유로 OPEC은 1970年에 들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냉전기간으로 미국은 소련으로부터 걸프만 대량 석유 매장량의 정제와 추출 설비를 지켜내려고 했었습니다. 또 한 미 국무부는 냉전으로 인한 이익과 걸프만 동맹 보호를 지 지원하며 주요 반경쟁적 행위 조사를 막기도 하고, 석유사에 재정적 지원을 승인하기도 하였고, 산유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수교도 단단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석유 공급에 대한 OPEC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었고, 사우디를 포함한 다수의 OPEC 회원국들은 미국 달러 기반의 석유 계약을 맺었습니다.

 

 

한국의 연도별 GDP 성장률
한국의 GDP 경제 성장률

 

 이 후 이스라엘 재건과 그 주변 국가들과 갈등이 많았는데(이집트, 시리아), 여러 차례 전쟁이 발발했고, 중동의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의 서방 지원을 탐내며 공급량을 줄이고 관리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석유를 무기화 하였습니다. 그렇게 석유는 당시 현재 시장에서 70%나 가격이 상승되었습니다. 점점 석유의 가격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지속적 상승하여, 1차 석유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1973年 10月) 한국의 경우 경제 성장률이 많이 떨어짐

 

 그 후 1977년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의 권위주의적 군주제에 대한 이슬람교도와 비 이슬람 이란인들의 불만이 쌓이며 1978년 초 정권을 향한 시위가 일어나, 이듬해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란의 석유 수출은 전체 생산량 중에 약 -80% 미만으로 감소 해 버립니다. 그렇게 스노우 볼이 굴려지고 혁명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슬람 공화국이 선포됩니다. 당시 이란은 세계 석유 수출 2위였습니다. 이것이 2차 석유 파동입니다. 한국 경제 성장률 -1.6% 기록( 마이너스 성장 )

 

1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새로운 카르텔인, 카르텔 같지 않은 OPEC을 결성하여 석유 가격을 결정하고 조절하는데, 산유국의 OPEC 연합 작전은 성공한 작전 이었을까요? 현재 결과를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영향력이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여러 나라들의 개인플레이로 인하여 신뢰를 잃어버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하지만 석유는 인류 필수품 이라구..) 미래는 어떠한 형식으로 석유 가격이 변동할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후에 걸프전과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고, 21세기로 들어왔습니다.

 

2008년에 발생한 미국의 금융위기
미 금융위기

 

 2008년 금융위기로 석유의 가격은 폭락하였습니다. 원인은 2006년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며 압류나 연체 금융기관의 부도가 발생하였습니다. 부동산 투자, 가계 지출이 둔화되며 불황에 빠졌었습니다. 그리고 세계가 불황으로 접어들고 석유의 가격은 폭락해 버린 것 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위기는 점차 해소되었고, 미국은 셰일오일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신이 내린 땅..)

 

정리하며

뉴스에서 원유 가격 인상에 관한 내용으로 보도되면 난리 부르스인데 왜 그러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석유를 100% 대체하는 에너지원을 생산하거나,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것에 대한 방지로 여러 대책을 마련한다면 그래도 조금은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응형